시켜줘, 피터 파커 명예 방화범

평범한 공학 박사들의 장점은 그들이 아이언맨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점은, 그들은 토니 스타크가 아니다. 데드풀은 오늘도 토니 스타크가 되지 못한 불운한 수재를 만나 몇 개를 깊이 있게 묻고 오는 길이었다. 센트럴 파크는 워낙에 넓어서 경찰은 한 조각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만약 뉴욕에 땅을 파헤칠 코요테가 없다면. "정말 코요테가 있다면 로드 러너로 패버...

첫 만남에 대한 기억이 서로 다른 건 연인 사이에서 꽤나 흔한 일이야. 왜, 그런 거 있잖아. 나 사실 너를 전부터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 거. 하이틴 러브 스토리에 빠져서는 안 될 감동적인 스토커 선언이지. 잘 모르겠다면 배트맨과 조커를 생각해 봐. 덤블도어와 해리 포터라든가. 그도 아니면 예수와 기독교 신자라든가. 굿? 이해가지? 굿. 아무튼 서로를 알...

그렇게 이틀 정도는 뉴욕 시내에 데드풀이 스파이더맨을 애달프게도 불러대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이후로는 조용했다. 웃기는 건, 최대한 데드풀을 피해 다니려 애를 쓰다가도 막상 애정이 담긴 다양한 호칭들이 들려오지 않자 마음 한구석이 초조해졌다는 것이다. 자기야, 거미야, 웹스, 스파이디, 허니, 달링, "스파이더맨!" 피터는 허리의 총상을 누르며 신음했다...

한동안은 조용한 듯싶었다. 여기서 조용하다란 데드풀이 너덜너덜해지거나 데드풀이 누군가를 너덜너덜하게 만들지 않았다는 뜻으로 데일리 뷰글 1면에 빨간 쫄쫄이 남성 듀오에 관련된 비난조의 기사가 매일 새로이 업데이트되는 것은 포함하지 않는다. 피터의 입장에서는 그리 나쁜 일만도 아니었다. 들키지 않게 신경 써서 사진을 찍는 건 번거롭지만 사진에 빨간색의 면적이...

애석하게도 전신 라텍스 슈트를 입었다는 것만으론 사람을 유치장에 처넣을 순 없었다. 피터는 열과 성을 다해 조여진 광나는 옷 주름을 따라 시선을 내리다 마찬가지로 열과 성을 다해 존재감을 표출하는 고간을 발견했다. 두둑하게 사용한 아기 기저귀를 까만 쓰레기봉투로 팽팽하게 포장한 모양새였다. 더러워. "야 타!" "속이 탄다 진짜." "ㅈㄱㄴ." "뭐?" "...

"그 다리, 여기 있습니다." "네?" "바로 여기 있습니다." "예?" "이곳에." 김 순경은 곧 짜잔 소리가 날 것 같은 손동작으로 뒤편의 상자를 가리켰다. 모서리가 조금... 붉게 물든. 피터는 그만 기절해버리고 싶었다. 모른 척. 모른 척 해. 박스 겉면에는 냉장 보관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피터는 조금 속이 매스꺼웠다. 그는 지난번 냉장고에서 할로...

오늘의 원데이 클래스. 데드풀의 하우 투 킵 어 데드 바디! 제일 좋은 방법은, 냉장고에 넣는 거야. 코끼리와 신선 식품은 냉장고에 보관하는 게 상식이잖아? 물론 나야 썩은 고기 전문이지만. "좋아,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네 보스 어디있어?" "마, 말했잖아! 모, 모, 몰라!" "네 보스 어디로 튀었냐니까. 내가 어려운 거 물어봐? 나 그냥 내 친구 세르...

밤, 월요일의 시작,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 세르게이는 컨테이너 박스를 흘끔거리며 침을 삼켰다. 얇은 양가죽 장갑 안에 땀이 흥건해서 구멍이 난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던 아홉 살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는 스미르노프 가의 사 남매 중 둘째로 가난하고 힘겨운 유년기를 보냈으며 장성한 뒤 러시아 레드 마피아에 입단하였고 제법 괜찮은 수완을 올리는 조직에...

오늘 오후 내린 비로 철근이 흥건하게 젖어있다. 빗물이 얇은 스판덱스 위를 타고 흐르며 감각 한 구석을 자극한다. 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 멀리서 촘촘하게 반짝이는 도시 불빛을 등지고 스파이더맨은 크레인에 매달려 있다. 인적 없는 항구엔 층층의 컨테이너 화물에 짓눌린 대형 선박들이 가득하다. 겨울 바다로의 추락사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조...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 이토록 달콤한 자본의 맛을 보기 전까지는. 피터는 전기 히터 두 대에 둘러싸여 홑겹 반팔을 걸친 채 노트북을 딸각거렸다. 지금은 3월. 바깥은 가까스로 영상을 유지하는 날씨이다. 탁자 위에 놓인 얼음 가득 레모네이드 잔에 송글송글 물방울이 맺혀있다. 점심 메뉴는 글루텐 프리 누들과 과카몰리. 웰빙 라이프였다. 피터는 웰빙 라이...